Chapter9. 사과

34:30:00

  • -

    앗!

  • 말 사이를 날카로운 파열음이 갈랐다.

  • 유리잔이 떨어진 모양이었다.

  • 헉, 괜찮으십니까?

    래빈

  • 잠시만요. 바로 치우겠습니다.

    래빈

  • 냅킨을 꺼내 바닥에 쏟아진 조각을 그러모았다.

  • -

    아…안 그러셔도 되는데.

  • -

  • 어깨에 무언가 얹히는 게 느껴졌다.

  • 움찔해 고개를 돌리니 앞에 앉았던 사람이

    자리를 옮겨 내려다보고 있었다.

  • 어깨에 닿은 건 손이었다. 상대가 웃음지었다.

  • -

    다쳐요. 도구로 치우게 둬요.

  • 어…….

    래빈

  • 하지만, 조금이라도 정리해 두는 게.

    래빈

  • -

    아하하, 래빈 씨. 성실하시네요.

  • -

    그러고 보니, 다친 데는 없어요?

  • -

    괜히 저 때문에…

  • …….

    래빈

  • 잠깐…

  • 얹힌 손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났다.

  •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?

  •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?

  • 저어, 잠시만요.

    래빈

  • 어깨의 손을 조심스레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.

  • 그리고 그대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.

  • 정말 죄송합니다!

    래빈

  • -

    래빈 씨? 무슨…

  • 사실 저는 오늘 데이트를 위해 나온 것이

    아닙니다…!

    래빈

  • -

    네, 네!?

  • 상대의 표정이 황망해졌다.

  • 친구가 제발 제가 연애를 하길 바란대서 안심시키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.

    래빈

  • 여기까지 오시고, 시간을 쓰게 만들어

    정말 죄송합니다!

    래빈

  • 대신 이곳 식사는 제가 사고,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가 보상이라도 하겠습니다.

    래빈

  • …그,

    래빈

  • 친구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서 저는 얼른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…

    래빈

  • 호…혹시 친구에게 이야기가 잘

    마무리되었다고 전해도 되겠습니까…

    래빈

  • 말을 하면서도 낯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.

  • (이렇게 예의 없으면서도 염치도 없고

    무례한 부끄러운 소리를…!)

    래빈

  • 우르르 쏟아지는 말에 상대는

   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다.

  • -

    그…그러셨구나….

  • -

    친구를 위해서 나오셨구나…

  • (그렇지, 보통은 황당하겠지…)

    래빈

  • (이 실례를 어떻게 보상해야…!)

    래빈

  • 하지만 곧 웃음을 보였다.

  • -

    근데…

  • -

    다른 이유로 나오셨더라도, 저는 래빈 씨가 마음에 들어요.

  • -

    계기는 특이하더라도, 한번 좋은 마음으로 만나보면 어때요?

  • ?!

    래빈

  • 그건…

    래빈

  •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.

  • 그래서 잠깐 멈칫했지만…

  • 죄송합니다!

    래빈

  • 하지만 저는 아직 그럴 마음의 준비는

    되지 않았습니다.

    래빈

  • 무례는 먼저 저질러 놓고 죄송합니다…

    래빈

  • -

  • -

    그래도…

  • 이 사람은 여전히 똑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.

  • -

    미래의 감정은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요.

  • -

    이것도 인연이고.

  • -

    한 번 만나봐요.

   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돼요?

  • -

    친구한테 할 말이 필요한 거잖아요?

  • -

    말도 제가 잘 맞춰드릴게요.

  • -

    어때요?

  • 그렇게까지 말씀을…

    래빈

  • 잘못한 건 이쪽인데 대단히 호의적인 제안이었다.

  • (보기 드물게 친절한 분이실지도…!)

    래빈

  • 래빈

  • (하지만…)

    래빈

  •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확실해졌다.

  • 좋게 보고 말씀주셨는데 긍정적인 대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!

    래빈

  • 역시 의향이 없는 상태에서의 만남은

    저에겐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.

    래빈

  • 그리고 사실…

    래빈

  • 친구가 곧 이곳을 떠날 거라, 한 순간이라도 더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할 듯합니다.

    래빈

  •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다음에

    연락드려도 될까요?

    래빈

  •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.

    정말 죄송합니다!

    래빈

  • 양심이 쿡쿡 찔렸지만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기로

    하고 인사차 허리를 숙였다.

  • 가져온 짐과 계산서를 챙겨 떠나려던 때였다.

  • -

    -잠깐만요!

  • 날선 외침이 들렸다.

  • -

    잠시만요! 가지 마요.

  • -

    …테스타 김 래빈씨.

  • …네!?

    래빈

  • 이 순간 들으리라곤 생각 못 한 이름이었다.